2021-02-04
Accidental Casting.15

여행; 꿈결의 텍스트

우리는 등진 채 지내고 있다. 모험심을 갖고, 설렘과 긴장을 안고, 어쩌면 새로 찾을 수도 있는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던 시기를.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을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꿈에서 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이 세계를 댕강댕강 파먹을 수 있는 아름다운 꿈의 세계. 앗, 그런데 이건 책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여행은 느낄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 책자는 경험을 풀어놓은 책으로서 항상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기의 가치는 글쓴이의 상상력에 비례한다.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면 상상한 풍경을 사진으로 찍듯 세밀하게 묘사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실제로 보았다고 생각하는 풍경에 대한, 아무래도 세밀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묘사를 통해 그럴 수 있듯이 말이다. 우리 모두는 내면을 들여다볼 때를 제외하고는 다 근시안이다. 오직 꿈을 볼 때에만 제대로 볼 수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서울: 문학동네, 2015), 121.)

오감의 자극 같은 건 우선순위에 없는 페소아의 논리대로라면, “여행 가고 싶다”는 우리의 습관적 중얼거림은 코로나 시대를 설명하는 관용적 어리광의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든지 지구 반대편으로, 타인의 내면으로, 과거로, 우주로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꼭 떠나야 한다면 그곳은 화려한 휴양지가 아니라 인기는 없지만 언제나 존재했던 세계, 외면받기 쉽지만 들여다봐야 하는 어떤 깨달음의 세계가 아닐까.

여기, 여행 기록의 일반적인 문법을 비켜 간 혹은 관광과는 다른 여행의 태도가 담긴 책들이 있다. 부재할 때야 보이는 자유를 한껏 의식한 여행, 사진이 아니라 글에 담은 여행, 목적지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여행 등. 독해력과 상상력도 체력이라면,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포부로 지면을 넘겨보면 좋겠다. 직접 가는 여행의 일차원적 즐거움을 모른 척하며, 당분간은 이대로 괜찮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꿈결의 여행이 지겨워질 때쯤이라면 다시 각자의 논리로 떠날 수 있을지도.

✔️2021.02.04-

✔️Accidental Casting은 wrm 레퍼런스룸의 책을 소개하거나 책에 다가가는 방법을 제안하는 소규모 프로젝트입니다.

✔️도서 목록

제목 저자/역자 출판사 발행일
정처 없는 여행
1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 유혜자 열린책들 2008.05.10
2 잃어버린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 김화영 문학동네 2018.06.15
3 현기증. 감정들 W.G.제발트 / 배수아 문학동네 2014.10.24
구체적인 방황
4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류신 민음사 2013.12.06
5 릴케의 이집트 여행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정현규 문학판 2015.04.17
6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 자비에 드 메스트로 / 장석훈 유유 2016.10.24
낯설게 바라보기
7 Littor릿터 27호 코로나 다이어리 릿터 편집부 민음사 2020.12.09
8 공간의 종류들 조르주 페렉 / 김호영 문학동네 2019.08.30
9 엉망 Sasa[44] 작업실 유령 2018.10.09
이 시국의 여행 생각
10 Pitch by magazine Issue1 허태우 피치바이피치 2020.04.05
11 Pitch by magazine Issue2 허태우 피치바이피치 2020.07.20
12 Pitch by magazine Issue3 허태우 피치바이피치 2020.11.01
13 Pitch by magazine Issue4 허태우 피치바이피치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