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한 글자 One Letter 一文字

디자인의 사고를 동쪽으로 돌아본다
이제껏 우리 사회를 담고 있는 디자인의 원류를 거슬러보면 그 방향이 크게 서쪽을 향한다. 서구의 모던으로부터 디자인의 양식을 들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시각언어를 함께 수용했다. 우리 문화의 정서와 인상을 유럽식 표정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근대식 활판인쇄술과 함께 문자를 부리는 방식에도 서구의 정서가 내려앉았다. 분명 우리의 인식에 있어 디자인이란 서구의 문화였다.

한편,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동아시아 정서에 기반한 디자인을 자연스레 접한다.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도 인상적이지만, 동아시아 사회가 스스로를 주목하는 느낌도 예전 같지 않다. 특히 말과 문자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표현에 접근하는 움직임은 사회의 가치관을 시각언어에 담아내던 우리 미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한글자」展은 2015년 6월, 동아시아의 문자를 테마로 시작되었다. 당시의 작업들은 각종 전시와 디자인 컴피티션을 통해 해외에 소개되었으며, 길상 문자를 비롯하여 대지 위에 가득 찬 문자의 형태는 새로운 그래픽류(流)에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 두 번째 전시로 동아시아의 문자, 미학에 대해 고민하는 시니어 디자이너 6인이 모여 동아시아적 그래픽의 확장성 및 문자의 이미지성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기록하려 한다. 서구와 차별화된 문자문화에 주목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 디자인의 정체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一文字’

동아시아는 한자의 독특한 표의성으로 다양한 민족, 문화, 언어가 매개(媒介) 된다. 동아시아에 있어 문자란 언어와 구분되는 소통 수단이며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구분 지은 표찰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문자에 담긴 의미와 기운을 우러르며 자신의 문화를 구축해왔다. 그래서 동아시아를 두고 ‘한자가 만든 문화권’=‘한자문화권(漢字文化圏)’이라 한다. 이 지역의 문자는 소통을 담당하는 수단이기 전에 그 자체로 사회의 가치관이었다. 언어가 문자를 통솔하는 서구와 달리 문자가 언어와 사고를 통솔한다. 문자의 조합으로 언어가 확장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합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한글이라는 표음문자로 정보를 소통하지만 언어와 사고의 깊은 곳에는 표의문자가 구축한 매뉴얼의 정서가 작용한다. 가나(仮名)를 사용하는 일본, 로마 문자를 사용하는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내면에는 한어와 한자의 영향으로 ‘단음절어’의 특징이 뿌리 깊이 자리 잡혀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언어를 담는 한 글자, 한 글자의 음절은 소리 이상의 기운을 갖게 되었고 낱글자로 자립할 수 있는 호소력을 얻었다. 문자는 그 자체로 시간이 되고, 공간이 된다. 계절이 되고 강산이 되며, 생명이 된다. 때로는 조짐을 알리기도, 주술을 담기도 한다. 길상은 물론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문자의 독립성이고, ‘서(書)’를 서구의 ’writing’과 구분하는 이유다.

전시의 타이틀 ‘한글자(一文字)’는 동아시아의 문자에 담긴 소리, 언어, 의미, 사상을 함축하는 의미로, 동아시아의 문화 그 자체를 반영한다. 한 글자의 문자에 담겨 있는 의미에 주목하여 우리 사회의 정서와 인간미를 돌아볼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하며, 문자에 내포된 동아시아적 형상을 소재로 오늘의 그래픽과 소통하는 유익한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김윤 Kim Yoon
문장현 Moon Janghyun
박지훈 Park Jihoon
베니 아우 Benny Au
사이토 히로시 Hiroshi Saito
심우진 Sim Wujin
채병록 Chae Byungrok

2019. 12. 20(금) – 2020. 1. 5(일) 17일간
Open 12:00 – Close 19:00

오프닝 리셉션
2019. 12. 20(금) 오후 6시 –

whatreallymatters(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 L층

 

*<wrm space 대관 지원> 선정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