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4
Accidental Casting.19 차별금지법을 이해하는 방법

약 일 년 전 초여름, 각자의 영역이 자신을 가두지 않고 지켜주기를 꿈꾸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은 그간 여러 차례 추진되었으나 어떤 종류의 걱정을 사느라, 어떤 종류의 정치적인 시간을 지내느라 쉽사리 수면 위로 형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상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서 ‘살아야겠다’고 느낀 이들이 많아서일까, 이전과는 다른 감수성으로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올해 5월 말에 올라온 국회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22일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공식적으로 접수되었다. (2007년부터 이 법을 위해 국회에서 힘썼던 정치인들은 잠시 두고, 청원을 올린 사람은 2020년에 동아제약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받은 성차별을 공론화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던 ㄱ씨라는 점을 알아두자.)

그리하여 ‘차별금지법’이 새로 생긴다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으며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한두 마디씩 얹는 추세다. 그 한두 마디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언어를 반복하거나,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전형적으로 정치적이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모양이라 굳이 구체적인 예시를 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 모든 진술이 유효하지 않다기보다는, 정리해볼 만큼 다양한 말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굳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여러 소리를 듣고 나의 한두 마디를 만드는 일이다. 낯선 법 앞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는’ 소리는 말이 아니라 감탄사에 가깝고, 그 안에는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자리할 확률이 높다.

바야흐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규모가 커져야 할 때다. 여기서 논의는 말초적인 찬반 논쟁이 아닌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뜻한다. 논의할 요량이 없다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때다. 입장이나 생각을 정리할 만큼의 체력이 되지 않는다면, ‘차별금지법’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해야 할 때다. ‘차별금지법’이 어떤 말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읽어보는 시간이 버겁다면, 이런 법은 어떤 사건과 어떤 일상을 통과해 만들어졌을까 미숙하게라도 상상해보아야 할 때다. Accidental casting.19은 엄숙한 법 앞에서 취할 수 있는 나른하고도 날카로운 시간을 위해 준비했다.

도처에 나와 타인이 취약해지는 순간에 대한 기록,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들이 사건이 아닌 사연으로만 남은 기록, 당연하다고 생각한 절차나 대우의 논리를 허물어버리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읽기를 하기에 적절한 때라는 것이 따로 있긴 한 걸까? 자주, 시간은 우리에게 숫자로만 같다. “여태 이 법 하나 통과를 못 시키냐”는 말과 “아직은 시기상조다”는 말이 동시에 나오니까. 공유되는 번잡한 시간 감각을 잊고, 법이라는 창문을 통해 읽거나 이야기를 법에 여과해보자. 결국, 모든 정제된 언어의 너머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다.

*인쇄된 법안 시안은 2020년 장혜영 대표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의 일부이며, 현 시점을 기준으로 내용은 변경되었거나, 이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21.06.23-

✔️Accidental Casting은 wrm 레퍼런스룸의 책을 소개하거나 책에 다가가는 방법을 제안하는 소규모 프로젝트입니다.

✔️도서 목록

제목
1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2 대도시의 사랑법
3 애도와 투쟁
4 한국퀴어영화사
5 릿터 17호(2019.4/5) 비거니즘
6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7 한편 세대
8 보스토크 15호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9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10 멀고도 가까운
11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12 보스토크 22호 타인의 고통
13 붕대 감기